장엄한 화엄사에 마음이 왠지 무거워진다.
너무 힘이 들지 않는가? 아니 마음이 무언가로 가득찬 느낌이다.
절에 와서 너무 차 버리면 어찌하나. 비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데...
화엄사의 끝 연기암에서 비운 마음이 금새 차 오르니
영락없는 중생이구나.
계곡 가까이 나즈막한 담장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바람이 쏴 하다
화엄사 뒤안 높은 담벼락 사이로 난 계곡 숲길을 택하였다.
스님들이 앞서 가고 나는 그 뒤를 묵묵히 따라간다.
산죽이 우거진 숲 사이로 얕은 개울이 흐른다.
얼기설기 만들어 논 징검다리를 건너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는 듯 하다.
산죽숲과 계곡의 징검다리
얼굴까지 파 묻는 짙은 산죽숲을 한 번 더 지나자
햇살 따스한 안마당과 삼층석탑이 천년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화엄사의 산내 암자인 구층암,
이름으로 보아 옛날 구층석탑이 있었으리라.
정갈한 앞마당과 구층암이라는 편액이 걸린 고즈넉한 승방을 돌아 뜰안에 들어선다.
'아, 참 기이하구나. 무슨 나무일까?'
옹이도 그대로이고, 나무결도 그러하고
산 나무가 그대로 기둥으로 쓰인 모과나무이다.
위로 뻗은 가지는 서까래를 향하고
아래의 뿌리는 자연스레 주춧돌에 가 닿는다.
모과나무를 조금도 다듬지 않고
생긴 그대로 기둥을 세운 목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것을 용인한 스님은 또 누구일까?
아마도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이들이 아닐까?
목수는 어떤 마음에서 모과나무를 베어내 그대로 기둥을 세웠을까?
그들의 안목과 정신이 이 기둥에 그대로 드러나는 듯 하다.
죽어도 죽지않고
죽음이 곧 또 다른 살아있음을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은 말하고 있다.
이 승방이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맞은편 승방에는 가운데 기둥 하나가 모과나무 생긴 그대로 세워졌다.
승방처마 아래에는 1829년(순조 29) 석잠(碩岑)이 쓴 〈해동봉성현지리산화엄사봉천암중수기〉와 1900년(광무 4) 송암(松庵)이 쓴 〈등봉천암(登鳳泉庵)〉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포와 포 사이의 포벽에서 장혀의 쳐짐을 방지하는 부재로 화반위에 소로가 놓여 장혀를 받고 있다.
장독대와 우물
대나무 울타리가 장독대를 감싸고 있어 더욱 앙증맞다.
단촐한 석등과 승방
천불보전이 있는 구층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승방 건물이다.
이 건물은 남북 양 방향 어디에서 보아도 정면이 되는 특이한 구조다.
남북 양쪽에 출입문이 있고, 독립된 마당을 갖춰 남쪽에서 보면 남향집이고 북쪽에서 보면 북향집이 된다.
동종은 1728년(조선 영조 4) 조성된 것으로 높이 64cm이다
대웅전인 천불보전에는 일천여개의 토불(土佛)이 모셔져 있다.
천불보전 앞에 살아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죽어서 승방 기둥이 된 모과나무를 마주 보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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