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은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이 곳 계곡의 아름다움은 지리산에서도 으뜸이다. 일곱 개의 폭포가 연달아 있는 이 계곡은 가을 단풍이 들면 가히 선경이다. 이 빼어난 산속의 제법 넓직한 터에 벽송사가 있다. 절의 창건시기는 절 북쪽에 위치한 삼층석탑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 말이나 고려초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년)에 벽송(碧松)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다.
서암정사 아래 주차장에서 벽송사 방향으로 길을 가다 보면 대나무로 엮은 나무 의자가 있다. 약간은 오르막인 이 숲길에서 아픈 다리를 잠시 쉬면서 고요한 숲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으리라.
벽송사 나무 장승(금호장군과 호법대장군)
원래는 절 아래 입구에 서 있던 것을 보존상의 문제로 이 곳으로 옮겼다. 왼쪽장승이 금호장군인데, 1969년 산불이 났을 때 머리 부분이 타 버려 참담한 꼴이 되어 버렸다. 여장승인데 하필이면... 오른쪽 장승은 남장승으로 호법대장군이다. 툭 튀어나온 눈과 뭉툭한 코, 입 아래 자세히 보면 수염이 있어 남장승임을 단박 알아차릴 수가 있다. 재질은 밤나무이다.

나무 장승 맞은 편 참나무의 옹이
조금은 머쓱하지만 하필 장승 앞에 위치하고 있고 생김이 기묘하여 질펀한 가루지기타령을 소개하는 데 좋을 듯하여 고민 중에 올린 사진입니다.
벽송사 일대는 판소리 여섯마당 중 외설적인 것으로 알려진 가루지기타령 '변강쇠가'의 무대이다. 벽송사 부근에 살던 변강쇠와 웅녀는 성력(性力)을 타고 났다. 하지만 어려서 글도 못 배웠지, 손재주도 없지,밑천도 한 푼도 없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밤낮으로 그 짓 뿐인 가난뱅이였다고 한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는데 그것도 안 하던 일이라 힘이 들어 궁여지책으로 길가에 있는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써 버렸다. 이에 격분한 팔도장승들이 통문을 돌리고 회의를 열여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내용이다. 장승을 민중에 비유하고 변강쇠를 지배층으로 풍자한 민중문학으로 평을 받기도 한다.

절 오른편의 오솔길을 따라 가가 보면 지리산 공비토벌루트 입구라는 표식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 이 곳 벽송사는 인민군(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픈 과거이다. 최근 지리산 빨치산 출신들과 토벌군 출신들이 함양에서 만나 화해를 하는 장면을 텔레비젼에서 본 적이 있다. 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남북화해를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지리산 구비구비마다 맺혀 있는 이러한 아픔들이 서로 용서되고 상처가 아물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벽송사 전경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이 한 채씩 있고, 높은 자리에 위치한 종루와 뒤쪽으로는 아담한 산신각이 있는 조용한 절이다. 벽송사를 흔히 '한국선불교 최고의 종가'라고 한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았으며 아울러 선교를 겸수한 대종장들을 108명이나 배출한 명실상부한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옛 사람들이 벽송사를 '운거천상(雲居天上) 구름 위 하늘 세계, 별유천지(別有天地) 인간 세상 밖에 따로 있는'라고 표현했듯이 벽송사는 수려한 풍광 속에 위치하고 있다.


보광전
법당으로 벽송사의 중심 건물이다.
법당에서 삼층석탑(미인송과 도인송) 가는 길의 오솔길
예전에는 추성동에서 벽송사 가는 길이 호젓한 비포장길이었다. 지금은 절 입구까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졍겨움은 덜하다. 그나마 이 짧은 오솔길이 있어 예전의 호젓함을 상상해 볼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오솔길 옆의 대나무숲
지리산에는 산죽이 곳곳에 있다. 대나무 보다 키가 작은 산죽숲은 한국전쟁 전후로 지리산 빨치산의 비밀 아지트로 주로 사용되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여 몸을 숨기기에는 이 보다 적당한 곳은 없으리라. 주로 빨치산 환자나 부상자의 비밀 아지트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미인송과 도인송
절의 이름은 벽송(碧松) 지엄대사가 중건하여 지어졌다고 하나, 벽송이라는 말이 이 두 그루의 소나무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것이 미인송이고 어느 것이 도인송인지 인터넷이나 신문자료들 마다 달리 설명하고 있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여서 함양군에 전화를 했다. 시원한 목소리의 여자 직원 분인데 "그게 소나무입니꺼?"하고 되려 나에게 물어 보는 게 아닌가.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소나무라고 설명을 해 드렸더니 "아무래도 벽송사에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예" 하면서 친절히 벽송사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벽송사에 전화를 하니 여자 보살님이 전화를 받는다. "어느 것이 미인송인가요?"하니 "기울어져 있는 게 미인송입니더"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아하! 내가 왜 이리 바보스러운지... 자세히 보니 호리호리하게 요염한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 미인송(왼쪽)이고, 정자세로 수도하는 도인처럼 떡하니 서 있는 것이 도인송이 아니겠는가. 내친 김에 "이 두 소나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도인송은 옛날 어떤 스님이 이 소나무의 빼어난 자태가 도인의 풍모와 흡사하다 하여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미인송의 유래는 잘 모르겠네요"라고 하였다. 나중에 밤에 주지 스님한테 여쭈어 보면 더 소상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허기야 굳이 유래를 모른다고 하여도 소나무의 생김새만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인송

삼층석탑(보물제474호)
미인송과 도인송이 석탑을 모시고 있는 듯 하다. 부처를 모시는 불제자처럼....
이 곳은 한적하여 가을 햇볕을 쪼이며 사색에 잠기기에 딱이었다.

여행팁
대전 통영간 고속국도- 산청나들목-60번 지방도 유림면 서주리- 서주교- 남호리 방향 60번 지방도-추성동-벽송사
벽송사 가는 길의 서암정사도 강력 추천 - 당신은 거기에서 지리산의 아름다운 하늘정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서암정사의 사진과 글은 제 블로그 카테고리 중 암자를 찾아나서다의 서암정사를 참고하세요)
'스크램하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청송 주왕산 단풍 (0) | 2007.11.17 |
---|---|
[스크랩] 지리산 화엄사 (0) | 2007.11.17 |
[스크랩] 옛 목수의 모과나무 사랑으로 세운 구층암 (0) | 2007.11.09 |
[스크랩] 치악산 상원사 (0) | 2007.11.09 |
[스크랩] 백암산 백양사 (0) | 2007.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