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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북김천/불령산 청암사

ehkoang은희광 2007. 11. 9. 21:30


불령산 청암사 일주문

청암사는 조선 인조 25년(1647)화재로 전소 되었는데 벽암 성총화상이 덕유산에서

이소식을 듣고 그 문도인 허정대사로 하여금 청암사를 재건토록하니 이에

허정대사가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중건하였다. 이를 제2차 중창이라 한다.

이로부터 130여년이 지난 정조 6년(1782)에 다시 재화를 입어 전각이 소실되자

환우대사가 다시 신궁보전 과 누당을 중건하였는데 이를 제3차 중창이라 한다.

그리고 고종 9년에는 주지 대운당 스님이 극락전을 중건하였다.1911년 9월 21일

밤 청암사는 다시 화재를 입어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에 대운대사가

화주가 되어 대중을 위로하고 독려하여 그 다음해 다시 청암사를 재건 하였다.

특히 대사는 중국 강소성으로부터 석가상을 조성하여 대웅전을 봉안하는

등 전각의 장엄을 완성하였다. 이를 청암사 제4차 중창이라고 한다. 청암사

문화재로는 청암사 대웅전, 청암사 다층석탑, 청암사 보광전등이 있다.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58년(신라 헌안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 구산선문 동리산문 개조인

혜철(惠哲:785∼861)이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647년(조선 인조 25) 화재로 소실되자

각성(覺性: 1575∼1660)이 허정(虛靜)을 보내 중건하였다.





청암사 대웅전 전각

1782년(정조6)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후 환우(喚愚)와 대운(大運)이

중건하였다. 이후 1897년에 폐사되었다가 1900년대 초에 극락전을 복원하면서 다시

절을 세웠다. 응운(應雲)이 보광전을 건립하다 입적하자, 대운이 완공한 뒤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대운이 복원하였다.





중국 서안에서 모셨다는 대웅전 주불

건물로 대웅전과 육화전·진영각·정법루·일주문·사천왕문·비각·객사 등이 있다.

대웅전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고, 육화전은 옛날에 강원(講院)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또 정법루는 현재 종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승가대학 요사체 건물

유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석탑과 부도군, 각종 비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은 본래 4층이나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층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군에는 각성의 사리탑과

태감(泰鑑)·지성(智性)의 공덕비가 남아 있다. 그밖에 일주문 안의

사적비와 회당(晦堂)비각·대운당(大雲堂)비각 등이 전해진다.





청암사 극락전 모습

청암사는 자주 찾아가는 사찰 중에 한 곳입니다.

이곳은 비구니 승가대학이기 때문에 경내가 너무 조용하고 깨끗하며,

관람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주문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는 하늘이 보이지 않으며, 계곡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광전 안내문

청암사 경내에는 묵언

이라는 글자가 많이 보입니다. 고성방가를 하지 말고 필요한 말을 할 때도 주위

다른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젊은 비구니 스님들께서 항상 청소하시고 선방에서 공부하시며 때로는 밭에서

일을하시고 너무 자연과 가까운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보광전 전각모습

청암사 누각에서 스 님들께서 주시는 차맛은 정말 그만입니다.

감잎차,홋잎차,솔잎차,등 스 님들께서 직접 만드신 차 들 입니다.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에 신라의 도선국사에 의 창건되었다.

조선인조 25년(1647)화재로 전소 되었는데 벽암 성청화상이 덕유산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 문도인 허정대사로 하여금 재건토록하여 중건하였다.





보광전 부처님1

그 뒤 몇차례의 화를 입어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게 되었다.

청암사는 학풍이 드높았던 곳으로 박한영 스님, 고붕 스님 등 우리 나라의 대표적

학승들이 강론처로 삼았으며, 전성기에는 학인이 300명을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경북에서 둘째가는 불교강원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승가대학이 들어서 있다.





보광전 부처님2

청암사 경내를 가로지르는 불령동천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과 극락전이 마주보고 있다.

청암사 극락전은 옛날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원하며 한많은 세월을 보냈던 곳이다.

극락전 뒤에 자리잡은 보광전에는 42수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마흔두개의 손으로

중생들의 고통을 어루만진다는 이 불상은 청암사를 대표하는 부처님이다.

이외에도 인도식 불상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으며 석탑과 범종 큰북 등의

문화재들이 있다. 산내암자로 백련암, 수도암이 있다.





보광전 부처님3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총 23평의 팔작지붕이며 1976년에는

현 주지인 지형비구니가 청기와로 번와했다.대운대사가 4중창을 끝내고 중국

강소성으로부터 석가상을 조성하여 대웅전에 봉안하고 1914년에는 여러가지

성보를 제작하여 대웅전에 봉안하니 청암사 대웅전은 명실상부한 보전이

이루어졌다.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1.26m*0.76m), 후불탱,산신탱,

신중탱,칠성탱,독성탱과 함께 소종과 수번이 있다. 1987년에

강주 지형 스님이 승가대학을 설치하여 비구니의 수학장이 되었다





청암사 대웅전앞 석탑

청암사 주지 대운대사가 청암사 중건시(1912년) 성주땅 어느 논바닥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고도 전해지는데 신라 혜안왕 3년(859년) 도선국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

봉안을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4매의 지대석위에 2층 기단으로 되어있고, 1층

옥신에는 4면에 좌불이 1구씩 양각되어 있다.각층 옥신에 비해 옥개석이 넓으며

옥신 받침이 없어 다소 불안정하고 옥개석의 전각은 반전되었으며 상륜부는

일부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불안정하기는 하나 경쾌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청암사 부도들

보광전의 창건은 미상이나 조선 정조 6년(1782년)에 화재를 입고 환우대사가 다시

신보광전을 중건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1689년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으로 인해 폐위되고 서인의 몸으로 이곳

청암사에 잠행하여 극락전에 은거하면서 복위를 빌었다고 전하고, 또 극락전

서쪽에 인현왕후의 복위원당으로 보광전을 건립했다는 설도 있다.

191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대운대사가 대웅전과 함께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보광전을 중수했는데 대포양식과 익공양식을 절충한 전통적인 수법을 썼다.



출처 : 경북김천/불령산 청암사
글쓴이 : cp잭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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