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갯취, 새별오름 축제장에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34

 

♧ 2008년 6월 23일 월요일 흐림


어젯밤 남북한 축구와 오늘 아침 일찍 벌어진 유로 2008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네 번째 준준결승을 보면서, 우리 축구의 실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FIFA랭킹 세 자리 숫자의 아시아 국가대표 팀도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며 기습을

노리면 이길 수도 있다는 작전을 쓰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세계 정상 수준이라는 점에서 비교할 바는 못 된다.

선수층의 두터움, 흐트러지지 않은 수비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득점력이 부럽다.

그래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히딩크가 했던 대로 감독 마음에 드는 선수를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긴 훈련이 요구된다.


그제는 지난 음력 정월 대보름 들불 축제 때 활활 타올랐던 새별오름에 올랐다.

오름에 접근하는 순간 남쪽 사면을 다 덮은 듯 무성한 갯취 무더기가 빛난다. 

갯취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곧게 서고 꽃대까지의

높이는 1m 넘는 것도 있다. 뿌리 쪽에 돋은 잎은 긴 잎자루를 가진 넓은 타원형이고

청색으로 털이 없으며, 줄기에 난 잎은 잎자루가 없이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꽃은 5∼6월에 노랗게 피고 총상꽃차례를 이루고

총포는 원기둥 모양으로 털이 없으며 포편은 달걀 모양이다.

두상화의 가장자리에는 설상화가 있고 가운데는 통꽃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제주도 중산간 지대, 경남 해안가에 분포한다.

 

 

♧ 취나물 뜯기 - 이향아

 

산길을 걸었다.

허리엔 나지막한 산죽 숲을 거느리고

발밑엔 가으내 봄내 떨어진 낙엽을 버스럭거리면서

쉬며 걸으며, 걸으며 쉬며 산길을 걸었다.


이승의 끝을 가듯 산길을 걸으면서,

이따금 나는 하늘의 별 같은 땅 위의 풀잎을 찾아내리라 결심하였다.

그것은 향기로운 취나물 잎사귀,

너울거리는 취나물 잎사귀는 나의 과업.

일순의 섬광 은혜로운 계시여.


이것이 취나물이지요. 분명 이것은 취나물일까요.

나는 그럴싸한 풀잎을 뜯어서 지나가는 이웃 산행자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네, 옳습니다. 바로 이게 취나물입니다라고 반겼다.

어떤 이는 이것은 취나물이 아니라 불로초입니다라고 놀랐으며,

어떤 이는 이것은 먹으면 잠자는 듯이 죽는 독풀입니다라고 겁을 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불로초가 아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독풀도 아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한갓 산나물 취일뿐.

 

 

나는 때로 희망, 때로 절망을 번갈아 느끼면서

진리란 무엇인가, 사교(邪敎)란 무엇인가 허우적거렸다.

시간은 흘렀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서

모든 산풀 위의 이슬을 걷어내었다.

해는 떠서 모든 산숲의 한적을 걷고

해는 떠서 산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나는 갑자기 산길을 걷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행복하였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저쪽 산말랭이 펀펀한 데에 무더기로 있습디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개울가 언덕에 지천으로 있습디다.

사람들은 비밀한 장소를 일러주듯 내게 은밀히 속삭였다.

허위허위 달려간 산말랭이에도 개울가 언덕에도 무더기로 헝클어진 취나물은 없었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나도 진작 뜯었으면 좋았을 걸. 인제는 시간이 늦었습니다.

참 잘하시는 일입니다.

이 세상사람 절반이 내 취나물 뜯기에 마음을 쏟아 주는 듯했다.

행인들은 취의 향기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였다. 세상이 무심하다는 말은 빈말이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온 산에 묻어 있는 취의 향내를 나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


차 챠 처 쳐 초 쵸 추 츄 츠 치, 취 취 취

하루 종일 구구단을 외우듯 취를 외우며 산길을 넘었다.

내 그릇에는 겨우 몇줌의 취나물이 고독하게 아주 고독하게 시들고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인생은 엎드려 취나물 뜯기

나는 마치 취나물을 뜯기 위하여 산길을 걷는 것처럼 세상만사를 착각하고 있었다. 

차 챠 처 쳐 초 쵸 추 츄 츠 치, 취 취 취

인생은 엎드려 취나물 뜯기

 

 

♧ 들꽃 연가  - 김설하


너 피었던 길

햇살이 담금질했던 들녘에

향기로운 시절 쓸쓸히 흔들려서

저미도록 아픈 이름 매달고

떨어트린 그리움 한 조각

씨앗하나 키워 보듬었을라


짙어지기만 했었던 날이

환하게 웃었던 날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우고

가장 어두운 배경이 되어야한다면

그리워할 수 없는 추억은 아닐까 몰라


시절은 또 하나의 나이테를 둘러놓고

뒷모습 쓸쓸한 이별이 저만치가도

우리 살아가는 날 수많은 인연 중에

꽃이었던 날이 있었듯

다시 짙어지는 날 있을지 몰라


꽃불 켰던 마음 어둠이 내리면

고독한 그림자 가슴에 묻고

네 입술로 적신 꽃잎 마르기전에

눈물이 마르면 그리움도 말라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문패하나 너 앉았던 자리 걸어둔다

 

 

♧ 야생화 - 강태민


그대는 내게 불리지 않은 이름


과거 속

기억되지 않은 자연

무수한 시간을 피워버린 이름 그대


무상무념

귀 기울여 마침내

억겁을 스친 소리

그대 모양 담아 들리고


꽃 피워

자랑하지 않는 모습

누구 알지 않을 들녘 깨끗이 아름다워


사랑과 같은 형상으로

사랑과 같은 향기 피워내는

내게 아직 불리지 않은

그대는 저절로 아름다운

바람의 꽃  야·생·화

 

 

♧ 야생화 - 홍수희


너에겐 그늘이 있었네

눈가 푸르스름한

이미 예고된 그늘이 네게 있었네


깊고 후미진 산 속,

가시 많은 덤불 비집고 나와

함초롬히 이슬 머금고 피어 있는 너


죽음이 없이는 부활 없느니,

온전히 다시 죽기 위하여

낮게 아주 낮게 엎드려 피어 있는 너


단 하루를 산다 하여도

온몸으로 다시 살기 꿈꾸는 너는

은총의 길이만큼 그늘을 드리운 너는


이 세상 가장 어두운 산 속,

비바람 온통 가슴에 안아

고통을 관통한 화사한 부활이 되고픈 너는


너에겐 그늘이 있었네

눈가 푸르스름한

별빛 흩어지는 그늘이 네게 있었네

 

 

출처 : 갯취, 새별오름 축제장에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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