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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뿌리, 잎, 꽃 희어 삼백초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33

 

▲ 2008년 6월 20일 금요일 비


장마 날씨라는 게 종잡지 못해 전선이 오락가락하면서 비를 뿌리든지

찌는 듯이 덥든지, 어떤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을 뿌린다.

오늘 날씨가 그랬다. 오전에 비가 뿌리다가 개었다가 하며 내일 갈

거린악 산행이 걱정이 되어, 비가 왔을 때 대처할 곳을 생각했다.


거린악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오름이어서 나무가 울창한데다가

한라산에서 발원한 서중천이 가로질러 한 바퀴 돌아오려면

냇가를 세 번이나 건너야 되기 때문에 밤새 비가 내린다든지

아침에 비가 많이 내리면 조난당하기 쉬울뿐더러 산행이 재미없다.


그래서 비가와도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서 단조롭지 않은 자배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토산봉으로 대체하고 카페에다 공지했다.

그리고 거린악은 비중이 있는 오름이라 희망자만 다음 쉬는 토요일에

번개 산행할 것을 제안하고 나니, 한라산에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비친다.


6시에 퇴근하여 어둡기 전에 아랫동네 대문 앞에 피어난 이 삼백초를 찍었다.

삼백초는 쌍떡잎식물 후추목 삼백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뿌리, 잎, 꽃 세가지가

희어 삼백초라 불리며 습지에서 자란다. 줄기 윗부분에 있는 2∼3개의 잎은

꽃이 필 때 표면이 흰색이 되며, 한방에서는 전초를 말려 간 계통의 병에 처방한다.

 

 

♧ 흰 나비 - 김종제


오전에 올라가서

물리도록 꽃 핀 것을 보았으니

오후에 내려와서 지천으로 

나비 날아다니는 것을 보겠네

눈에 보이는 것은 수런수런

재잘거리는 당신 꽃이고

나는 속에서 불이 난듯이

급하게 좇아가며

날개 펄럭이는 마음을 지녔다

고개 들면

먼 산 깊은 계곡이 나타나고

텅 빈 집에서

지붕 무너질 듯 기둥 쓰러질 듯

몸과 몸이 만났으니

 

 

그곳에서 물 한 모금으로

무화(無花)의 애탐마저 씻어내고

천상에서 흘러내려온

얼음에 손을 담가

우화(羽化) 되기 전

고치 속에 누워 꽃 찾아가는

흰 나비의 꿈만 꾸어라

내려가는 고개마다

세상의 불빛 하나씩 꺼지고

오로지 꽃만 남아

새벽까지 등불 밝히고 있으니

나도 날개 접고

당신의 꽃 무덤에 내려 앉아 있어라

마침내, 저 둘이 만났으니

섬으로 간 신혼여행의 첫날밤처럼

눈웃음 칠 일만 남았다

 

 

♧ 흰색에 대하여 - 이향아

    

흰색은 미뤄둔 사랑이다.

백에 하나라도 혹시 몰라서 밑바닥에 깔아 둔 명주 짜투리이다.

흰 말 타고 오려나 오늘쯤 그대는

멀쩡한 하늘 아래, 칼빛처럼 번뜩이는

흰색은 예감이다.

이젠 끝났다. 다시 시작

흰색은 낯선 출발이다.

찬서리 낮게 깔린 새벽의 고요

뿌연 길 걸어서 가출하는 마음이다.


흰색은 가난이다.

이른 봄 엎드려서 쑥을 캐는, 엎드려 밭두렁에 쑥을 캐는

온 들판에 널부러진 우리들의 입성이다.

 

 

흰색은 절망이다.

'이제는 여기 아무것도 없음' 손을 저어 보내는

흰색은 거절이다.

어제 같고 그제 같은 나날, 지치도록 바라보면

흰색은 순종이다.

외로운 탐색도 끝난 좌정.

수 천 수만으로 떨어지는 나비떼

흰색은 황홀한 어지럼증이다.


물가루 안개비는 치근거리고

아무 생각도 없이 뜨고 사는 눈이여,

흰색은 무심이다.

아니다, 아니다, 흰색은 무지다.

비어 있음으로 눈물 나는 순결이다.


함박눈 쏟아지는 고향 언덕엔

겨울바람 펄럭이던 흰 치맛자락.

불을 켜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깃발이다.

흰색은 초월, 초월하는 슬픔

하얗게 목을 늘여 투항하고 싶은 오후 세시 바닷가

미칠 듯한 적막이다 흰색은.

 

 

♧ 흰 산 - 강서일


까마득한 웃음이다.

그렇게 천년을 살아

가슴 한켠에 침엽수 푸르고


오늘은 그대 눈썹 위에

하늘의 눈을 받아

사람의 집들을 키운다.


어쩌다 봄이 와

붉은 꽃 매달리면

무어라 노래할까,


새벽부터 울어대는 눈보라

멀리서 낮게낮게 흩날리는

흐릿한 말, 무어라 답할까.


구름을 밟고 오르기엔

너무 무거운 나의 혼. 

 

 

♧ 머리에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은 - 허수경


 그날의 일기 속에는 불안 같은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 너의 품을 빠져나온 오랫동안 잠을 잔 혀는 아이들의 머리에 매달린 흰 꽃에 입을 맞추고 흐르는 불처럼 창밖 너머 펼쳐진 숲을 건넌다 오 오,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너의 품속에서 새로운 생을 끄집어내듯 나는 아프다 오 오 새로운 지문의 날들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때 너는 일기를 다시 쓰고 일기장 속에서 오래된 시간은 잠든다 오래된 시간은 얼마나 고요히 우리를 예언했던가 머리에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이 순한 시간 속에서 사라질 것을 오래된 시간은 얼마나 고요히 예언하고 있었던가


 

♧ 비오는 날 흰나비의 날개짓 - 문추자


흰 우산 쓴 여인의 슬픔이 빗속에 번지는

초원을 꿈꾸는 간이역처럼

원시림의 문양으로

또록또록 젖어오는 그리움

빗속에서도 목마른 흰나비의 날개짓

눈시린 몸부림을 보아 주세요


빗줄기 줄무늬에 가려

뽀오얗게 이그러진 달밤처럼 비틀거려서

애수의 빗발이 방울방울 맺혀

팔꿈치가 후들거리는

흰나비의 운명이 뭉개진다 해도

그리움은 끝나지 않아요


비 맞으며 전깃줄에 매달려 거미집을 짓는

거미줄에 가로세로로 얼킨 생존의 매듭이

주루룩 빗줄기에 뜯겨져

종말이 네 영혼을 꺽어도

흰나비의 그리움은 영원할 거에요


개인 날 꽃나무에 몽뚝히 핀 꽃잎만

천생에서 움튼 비옥한 그리움의 몸짓이 아닐 것 같아

간이역에 멈춘 원시림의 기차처럼

쏟아지는 빗속 흰나비의 날개짓

초원의 빗물에 번지는 그리움 아아...!! 보이잖아요

 

 

출처 : 뿌리, 잎, 꽃 희어 삼백초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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