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세 번째 올리는 작약꽃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32

 

▲ 2008년 6월 19일 목요일 비


어젯밤 비가 제법 내리고 오늘은 가랑비를 뿌리다 말다를 계속한다.

이 장마를 화끈하게 달구어줄 그 무엇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지난번에 어느 조그만 절 입구에서 찍은 작약꽃을 생각해내었다.

바람 부는 날이었는데 너무도 강력한 이미지가 거북살스러웠다.


사실 작약을 여기 올리는 것은 올해만 해도 세 번째다. 

처음에 우리 제주에 자생하는 하얀 작약을 만난 기쁨에 신나게 올렸고

다음 스승의 날 체육대회 때 오현고에 갔다가 한 군데 있는

빨간 재래종 작약이 너무 정서에 와 닿아 올렸었다.

 

처음 이 오름 이야기 블로그를 시자갛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땅에 자생하는

들꽃이나 산과 들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의 꽃, 열매를 올리려 기획했으나

시기별로 현장을 찾아 다니며 일일이 찍어 올리는 시간이나 여건이 안 되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주변에 흔히 보이는 것까지 확대해 왔다.


작약과 모란은 얼핏 보면 닮은 점이 많지만,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며, 모란은 나무처럼 줄기가 땅 위에서 자라 겨울에도 말라죽지 않고,

작약은 겨울이 되면 땅 위의 줄기는 말라죽고 뿌리만 살아 이듬해 봄에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꽃을 피운다. 작약이 이렇게 여러 종류가 있었는지 예전엔 잘 몰랐다.

 

 

♣ 작약꽃 - 김선영


한 여인이 작약꽃을 안고 있다

몸이 반쯤 꽃에게 부어져

남자에게 날으던 적의(敵意)가

꽃에게 내린다


잎잎에 증오가 물들여져

작약은 더욱 타고

불꽃이 여인을 뜨겁게 덴다


여인이 작약꽃을 안고 있다

그녀의 심장의 피라는 피가 통곡을 하며

흥건히 배어나와 팔딱이는 듯

꽃은 화려한 비애와 쓰러지는 우울히 깨어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돌연 또 다른 꽃잎이

겹겹이 꿈으로 그녀를 감싸 안고 들어와

꽃다발 속에 한 대의 꽃으로 그녀를 묶여 들었다


드디어 여인이 작약꽃을

자기 마음 깊숙이 운반해 들이고 있었다

아까 만났던 그 남자에게

이 꽃다발을 건넨다 해도

역시 그녀는 꽃대로서 꽃다발에 끼어

아까 그 남자에게 실려갈 것을.

 

 

♣ 작약꽃 이울 무렵 - 유치환


저적히 갸우린 안에

억토(億土)에의 하아얀 길이 있어


하나 왕국이 슬어지시로소니

애달픔이 어찌 이에 더 하랴


나의 청춘이 소리 없이 못내 흐느끼는 날

더불어 고이 너도 이우노니


귀촉도야 귀촉도 !

자국자국 어리인 피 가슴 밟는 울음에


아아 꽃이 지는지고

---아픈지고

 

 

♣ 작약 - 노천명


그 굳은 흙을 떠받으며

뜰 한구석에서

작약이 붉은 순을 뿜는다


늬도 좀 저 모양 늬를 뿜어보렴

그야말로 즐거운 삶이 아니겠느냐


육십을 살아도 헛사는 친구들

세상눈치 안 보며

맘대로 산 날 좀 장기(帳記)에서 뽑아보라


젊은 나이에 치미는 힘들이 없느냐

어찌할 수 없이 터지는 정열이 없느냐

남이 뭐란다는 것은

오로지 못생긴 친구만이 문제삼는 것


남의 자(尺)는 남들 재라 하고

너는 늬 자로 너를 재일 일이다


작약이 제 순을 뿜는다

무서운 힘으로 제 순을 뿜는다

 

 

♣ 작약 꽃 - 유창섭


작은 바람에도 우는 숲

소쩍새 울더니

초저녁부터 숲은 가슴으로 안겨와 눕고

바람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밤

내내 몸 뒤척이다가

아침에사

가슴 빈 곳에

작약 꽃 무리지어 피었음을

알았네


무성한 잎새 흔들며

빨강 하양 분홍 너른 꽃잎 사이

어른거리는 모습

들머리 흩어지는 향기에

그대인 줄 알겠네

 

 

♣ 여름 한 철 - 도종환


동백나무 묵은 잎 위에

새 잎이 돋는 동안

아침 창가에서 시를 읽었다


난초 잎이 가리키는 서쪽 산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로 세우지 못한 나랏일에 마음 흐렸다


백작약 뿌리를 다려 먹으며

견디는 여름 한철


작달비 내리다 그친 뒤에도

오랜 해직 생활에 찾아온 병은

떠날 줄을 몰랐다


여름밤 깊고 깊어 근심도 깊은데

먼 마을의 등불도 흔들리다 이울고

띠구름 속에 떴다 지는 까마득한 별 하나

 

 

출처 : 세 번째 올리는 작약꽃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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