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16일 월요일 비
내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니 어느 정도가 될는지 모르나
주말마다 날씨가 뒤틀려온 터라 크게 걱정되지도 않는다.
5월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오름 강좌를 하는 바람에 일요일까지 이어져 이틀 동안
한 번도 야외활동을 거른 날이 없는데, 시원스럽게 좋은 날이 없이 지나갔다.
제주가 아열대 기후로 변했는지, 근래 들어 우기(雨期)처럼 날씨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적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오름에 다닐 때는 처음으로 카메라를 소지했기 때문에
연속해서 들어오는 황사 때문에 시원스런 한라산의 모습을 찍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올해는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봄에 황사는 덜했다고 기억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알려져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했던 유홍준 씨가 말한
‘아는 만큼 보인다’의 덕택인지 요즘에 전에 안 보이던 들꽃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이 골무꽃이 그 중 하나로 정말 제주도에 없다고 여겼던 꽃인데 어디서 내려왔는지
오구시오름에서 처음 만난 뒤, 사라봉과 5.16도로에서 계속 보인다.
골무꽃은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풀 전체에 짧은 털이 나고
5∼6월에 이삭 모양의 자줏빛 꽃이 총상꽃차례로 피는데, 꼭대기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2줄로 빽빽이 달리며 화관은 긴 통 모양 입술꼴로 윗입술꽃잎은 투구 모양이며,
어린잎을 나물로 먹고, 민간에서는 뿌리째 위장염, 해열, 폐렴 등의 약재로 사용한다.
♧ 그리운 워워 - 이향지
― 목련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모르는 곳인데 인파 속에 있다
어디로 가야 집이 있나 두리번거리다 피스를 만났다
나는 피난을 가는 중이라 한다
나는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피스보다 식구들이 있는 워워로 돌아가려고 한다
피스의 군대들이 빽빽하게 줄을 지어 모퉁이를 돌아온다
나는 피스에 막혔다 빽빽한 군화소리
붉고 노란 불 방망이들의 끝없는 행렬
나는 피스의 군대에 떠밀려 억지로 걷는다
나는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워워로 돌아가서 아들과 남편을 만나야한다
나는 자꾸 돌아보며 워워에 남은 아들과 남편을 걱정하다
피스의 발길에 걷어차였다
나는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은 워워에도 없다
그들은 나를 찾아 피스의 군대에 입대했다한다
불발탄들이 워워 소리치며 스쳐 지나간다
밤에 피는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빽빽 울던 아기는
나는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나는 폭탄 옆에 앉아서
죽은 별들을 생각하다 워워에서도 걷어차였다
나는 우두커니 서있는 우드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필 거야 아니 터질 거야
내 손가락에 손가락을 얹어봐 가슴을 얹어봐
나는 마지막 폭탄에 가슴을 얹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나는 핀다
딱딱한 우드 속에서 솜털 골무를 떨어뜨리고
우윳빛 말들을 뱉어낸다
♧ 퀼트 - 송연우
달무리에 젖어든 내 뜰 안의 목련꽃처럼
봄하늘에 흰 구름 몇 점
조각천 가로 세로 한땀한땀 시침질한 것을
링 골무 바늘 가위 시침핀도 동원 시켜
솜과 뒷감을 대고 도안대로
이음 선을 따라가다
본다
짚으로 새끼 날을 쳐서
멍석 짚소쿠리 멍구럭 만드시던 시아버지나
봄 들판에 날아들던 종달새 소리 들려오는
하나 뿐인 조각이불
어느새 고달픔도 앗아간다
삶의 마디마디 불협화음으로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틈새 조각도
물빛으로 찰랑이는 누빔 이불 재료였다
기쁨도 때로는 아픔이었고
슬픔도 때로는 아름다움이었다고
삶을 다 살아봐야 알듯이
무늬가 다 만들어져서야 알았다
♧ 어머니 - 한분순
앙상한 가지 끝에
바람도
머물다 가고
추운 방 살로 덥히고
수심도
다독이며
해종일
무료를 깁으시는
조요로운
그 모습.
짜디짠
눈물이 배어
밀쳐놓은 반짇고리
실이며 바늘이며
골무며
헝겊조각
주름진 치마폭 속에
손마디를
모으네.
♧ 침선(針線) - 김종제
홍제동 1004 번지
한 평 남짓 가게에 앉아
맡겨놓은 생을 깁고 있는
눈매 선한 할머니를
당신이 어쩌다 만나게 된다면
사변으로 구멍 난 윗도리라든가
항쟁으로 찢어진 바지라든가
자주 풀어헤쳐 놓아
옷고름 끊어진 저고리라든가
바람 잘 날 없어
너덜너덜해진 치마라든가
한 아름 가져가면
손으로 꿰매고 박아서
감쪽같이 고쳐주는 것인데
그럭저럭 바느질에 한 생을 바치다보니
벼랑에 떨어져 조각난 마음이라든가
폭풍으로 뜯겨나간 사유라든가
물속에 빠져 퉁퉁 불어터진 속내에
오래된 속옷처럼 버리고 싶은 심정까지
땀땀이 감치며 누비며 홀치면서
어여쁘게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바늘과 골무 집어든 할머니가
아직도 눈이 환하게 밝아
늦은 시간까지 앉아 있다가
이제 막 부서진 별도
반쯤 달아난 달도 수선하고 있다
가게 문 영 닫기 전에
낡은 우주 한 벌 받아서
참선 같은
바느질 솜씨 한 번 보여주겠다고
♧ 성스런 바느질 - 고진하
비탈진 관동양묘원,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검게 그을은 늙은 아낙네들이 두더지처럼 납죽 엎디어 있다.
겨우 10cm 될까 말까 한 어린 자작나무 묘목을 촘촘히 심고 있는
저 갈퀴손들은, 말하자면,
지금 뻥 구멍 뚫린 지구를 꿰매고 있는 것이다.
흰 머릿수건을 벗어 쏟아지는 구슬땀을 훔치며 바늘 대신 쪽삽으로,
한 땀 한 땀 지구의 뚫린 구멍을 푸르게푸르게 누비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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