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일찍 핀 비양도 해녀콩 꽃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27

 

▲ 2008년 6월 8일 일요일 흐림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생 녀석들과 어울려 비양도엘 갔다.

체육대회니 야유회 등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있어왔기 때문에

요 몇 해 다른 일정과 맞물려 도저히 참석하지 못하고 그저 경조사에서나 만나

안부나 묻고 술이나 한 잔 나누고 헤어지곤 했는데, 이번엔 회장단이 아예

내 스케줄에 맞춰 날짜를 정하고는 준비와 안내를 다 맡으라고 한다.


버스 1대를 빌려 제주시에서 8시에 출발하였는데, 환갑을 다 넘긴 친구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한다. 복잡한 일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섬 여행을 간다는 생각이 복합되어 마음이 부풀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귀에서 두 명을 더 태우고, 신엄에서 다시 3명, 고내 1명, 곽지 1명, 봉성에서 2명을

더 태우고 가다보니, 시간이 빠듯해 9시 배를 못 타고 30분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배가 선수(船首)를 돌리고 물살을 젖히며 나아가자 환성이 오른다.

고작 15분이면 갈 거리를 먹고 살려고 바둥거리다 보니 마음먹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배는 멀리 등대를 밀어내고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궤적만 남긴 채 비양도 선착장에 안착했다.

 

 

식당을 정하고 점심 주문을 한 뒤 초등학교 앞 바닷가에 자리를 펼쳐 우선 한 잔 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기분 좋을 만큼 마신 뒤

섬을 한 바퀴 돌고 가재봉 위에 올라 비양도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내려와 낚시 팀이

낚아온 고기로 회를 떠서 술을 마시고 죽을 먹은 뒤 2시 45분 배를 타고 나왔다.


아직 시간이 일러 금산에 가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 잔, 곽지해수욕장에 가서 한 잔,

그러자 고내를 그냥 지나치면 되느냐고 술푸대들만 포구에 내려놓고 차는 떠났다.

이후 물오징어를 잡아 거나하게 한 잔 하면서 마지막 회포를 풀며 행사를 정리했다.

그늘이 별로 없는 섬에서 하루 종일 해가 구름 뒤에 숨어, 덥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술 마시는 시간이 길어지자 잠시 카메라를 들고 펄랑지에 갔더니 한 곳에

이 해녀콩이 꽃을 피웠다. 보통 7~8월에 꽃을 피우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핀 것이다.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인 이 해녀콩은

우리나라에는 이곳 비양도와 구좌읍 해안에만 분포되어 있는 보기 힘든 꽃이다. 


 

♧ 海女 - 진의하


해풍 속에서 나왔다가

해풍 속으로 사라지는

늙은 누이는

갈매기다.


날마다

바람을 등에 없고

물구나무서기로 자맥질하며

꿈을 캐는

갈매기다.


하루의 햇살도 비린내로 절인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탄다.


아득히 들리는

늙은 누이의 피울음 소리

아프칸 상공을 나는 포성처럼

휘-휘

허공에 쏟아지는 휘파람 소리

물빛 글썽이는 은비늘로

출렁이는 바다.

 

 

♧ 海女 - 강세화

  

마음이 고요하면 주저없이 통하는가

한 세상 떠도는 바람은 파도에 실어두고

아득히 바다 밑 속이사 생생히 넘나드네.

솔잎 우려낸 아릿한 물빛을 품고

오금 당기는 살깊이 저린 느낌이 도지면

어설피 감추지 못하는 알섬이고 싶겠네.

숨을 다잡아 찬연하게 솟구칠 때마다

새로이 피가 돌아 살아나는 기운은 아마도

애당초 몸속에 바다가

깊숙이 들어찬 노릇이겠지.

 

 

♧ 하도리 해녀군상 - 권갑하


등 뒤로 바르팟 흰 살결 아롱아롱 피워 올리는

북제주군 하도리 해안도로변 해녀들은

함부로 그 날 얘기를 풀어 놓지 않는다.


뿔 돋은 소라 껍질 밀물 썰물 모래가 되고

젖부른 엄마는 자꾸 아이 젖을 물리지만

현무암 검은 가슴엔 하얀 포말이 섬뜩하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혼백상자 등에 지곡

가슴 아피 두렁박 차곡

한질 두질 들어가난

저승길이 왓닥 갓닥

이여싸나 이여싸나


머리엔 흰 수건, 두 손엔 빗창과 호미

호-이 호-이 숨비질소리 수평선 띄워 놓고

일 천여 분노의 노래 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날 밤 덩치 큰 해일이 섬을 다 삼켰다

불턱에 갈무려 둔 불씨마저 다 지우고

바다는 고요가 잠든 밤 속으로만 흐느꼈다.

 

 

♧ 해녀 - 강정식


곤고한 날들만큼이나 헤어진 검정 물 옷 입고

해풍에 등 대고 기다리는

푸른 바다로 물질을 간다

질척대는 남편에게 몸을 주듯

철썩이는 물살에 내어 주고

자맥질해 내려간다

갈매기조차 놓고 간 시간 속으로

파도에 밀려온 날들만큼이나

칙칙하고 어둑해진 물속

죽고 사는 것이

숨 한끝 밖인 그 가장자리

천년을 가라앉아 기다리고 있는

바위 문 두드려 본다

과거와 지금 사이에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물밑과

기다리는 이 없는

날들 사이를 들락이면서

눌러 참았던

목쉰 날숨 소리만 길게

대답 없는 바다를 부른다

갈매기를 부른다


차가운 물살

그녀를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 Karajan - Beethoven Symphonies

 

출처 : 일찍 핀 비양도 해녀콩 꽃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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