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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망종을 장식하는 보리밭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26

 

♣ 2008년 6월 5일 목요일 비, 흐림


나라의 분위기처럼 시원스럽지 않게 오다 말다를 계속하는 비.

정말 망종(芒種)다운 날씨가 아닌 하루였다. 여름 농사를 시작하는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뜻의 이름으로 모내기와 보리 베기 철.

지역별로 다양한 풍속이 전해지는데,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매우 바쁜 시기로 속담도 많은데,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라든가

‘망종엔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 등이다.

그리고,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제13회 ‘환경의 날’이었다. 국민의 환경보전 의식 함양과

실천의 생활화를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l968년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스웨덴의 아스트 롭이 국제환경회의를 제의한 뒤 4년 만인 1972년 6월 5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하나뿐인 지구'를 주제로 세계적인 환경회의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1996년에  6월 5일을 법정기념일로 정하고, 국민의 환경보전

의식 함양과 실천의 생활화를 위한 행사를 개최하는데, 행사는 크게 기념식과

테마행사로 나뉘는데, 중앙기념식은 환경부와 민간단체와 경제5단체가 공동 주최하고,

지방은 환경관리청이 환경보전협회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서 행사를 치른다.

 

 

♧ 보리밭 에스키스 - 이원도


삶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나의 영혼을 앞세우고 보리밭으로 간다

검은 흙더미를 깡그리 물고 앉은

겨울 보리밭은 을씨년스러워서 좋다

봄을 기다리는 악다구니가 사탕처럼 달다

시가 오지 않는 날

나는 나의 강물 같은 육신을 증발시키며

바람목에 기대선 보리밭으로 간다

보릿고랑은 힘의 함성이다

연약하지만 함께 버티고

넘어진 듯하나 다시 일어난다

결실이 가까울수록 어깨를 낮추고

깡마른 근육질망정 서로를 지탱한다

바람은?

보리의 이랑을 흔들 뿐

실로 그 심장을 흔들지는 못한다


 

♧ 보리밥을 먹다 - 김종제


산 속 그늘에 앉아

누런 된장 한 그릇 놓고

식은 보리밥을 먹는다

김치는 오래 전에 시어 빠졌다

땡볕의 시절에 당신은

온기도, 찰기도 하나 없는

보리밥만 먹었다고 했다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한 숟가락에 가득 얹힌 밥알처럼

목숨 굴러 떨어졌던 날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무슨 단단한 열매의 씨앗 같아

잘 씹히지 않는 밥을

따뜻한 국 한 그릇 없이

목구멍 속으로 삼켜버렸다고 했다

등에 업고 머리에 이고

피란의 그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걸어갈 다리도 부서지고

타고 갈 배도 끊기고

벌써 죽었던 목숨이라고 했다

급하게 먹었던 것이 체해서

설사 같은 세상을 살았다고 했다

다시는 보리밥 먹지 않겠다고

아니, 오늘은 보리밥 먹고 싶다고

산 속 밥집에 문 열고 들어가

총칼 같은 수저를 먼저 들었다

이것저것 넣고 비빈 보리밥이

당신에게 들었던 전쟁터 닮았다

 

 

♧ 늙은 보리 - 강석화   

 

삶의 비결은

내 안의 초록을 손바닥에 꺼내어

햇빛으로 구어 내는 것


추수 끝난 빈 들녘에 홀로 씨 뿌려져

얼어붙은 땅 속에서도

체온을 지켜내는 것


보리피리 불어줄 아이

보릿고개도 사라져

내세울 건 옛이야기뿐이어도

들녘을 점령한 어린 벼 틈에서

수염을 쓰다듬다가

죽어 씨앗을 남기며


보리는 보리대로

벼는 벼대로

순서대로 가는 것


 

♧ 보리밭 - 안도현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내릴 수 없는 깃발이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땅 투기꾼 독점재벌에게는 도저히

빼앗길 수 없는 한 뼘의 분노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나는 희망

우리가 청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적에 대한 증오가 이렇듯 푸르고

동지에 대한 사랑이 이만큼 싱싱하다는 뜻이다

이 땅에 아직 보리밭이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아직 보리피리를 찬란하게 불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 보리밭 5 - 홍해리


햇볕이

땡땡땡 울고 있었다


대창을 든 병사들처럼

갈구리까락을 받쳐 들고

아이들이

그을음 없이 타는 유화(油畵),

황금벌판을 파도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미친 듯한 반 고호의 자유(自由)

넓은 밭마다 가득 차고

한켠으론

황토(黃土)ㅅ빛 고개가 보였다

반만년 오른 고개가 보였다

찌르륵 찌륵,

여치가 한낮을 걸르고 있었다.

 

 

♬ 보리밭 - 문정선

 

출처 : 망종을 장식하는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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