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박새꽃으로 맞는 6월

ehkoang은희광 2008. 6. 30. 19:25

 

♣ 2008년 6월 1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제주어를 사랑하는 모임인 ‘제주어보전회’ 식구들과 함께

숲을 찾아가 아름다운 풀과 나무 이름을 제주어로 불러보는 날이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이승악을 향해

싱그러운 숲길을 따라 걸으며 가슴 깊이 넣어두었던 말들을 불러낸다.


나비처럼 나뭇잎 위에 쪼르르 꽃 피운 나무는 산딸나무인데 ‘틀낭’이고

나뭇잎 아래로 쪼르르 종처럼 꽃을 매단 나무는 때죽나무로 ‘종낭’이고 

향기를 풍기며 6월의 햇살을 담뿍 먹고 기를 펴는 찔레꽃 나무는 ‘새비낭’이고

적어도 제주말 이름 3개씩은 알고 가자고 적는 허 회장에게 10개로 수정하길 권한다. 


죄피의 진한 향기를 좋아한다는 아줌마나 하나라도 더 알아보려고

가까이서 귀찮게 질문을 퍼 대는 아저씨도 오늘은 하나도 밉지가 않다.

숲속 환하게 트인 무덤가에서 기념사진도 찍으며 이승악 능선을 돌고 내려와

보목리 해녀의 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 한 잔을 곁들인 자리물회를 먹었다.


나눠 마신 술기운으로 차 안은 술렁이고, 제1횡단도로 한라산 숲길을 넘어오는데

갑자기 숲이 환하다 싶어 바라보니 바로 이 박새꽃 무더기여서 때 아닌 꽃구경을 하였다. 

내가 ‘봄의 전령사’로 명명한 박새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그늘진 숲을 좋아하며

7~8월에 연한 황백색의 꽃이 피고 뿌리줄기에는 독이 있어 농업용 살충제로도  쓴다.

  

 

♧ 6월에는 - 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 6월, 그리움 - 이승철


장마 소식 앞세우고

싱그러운 바람 한 줌

망초 꽃, 꽃대궁 사이를

나비처럼 누빈다


한강 둔치

갈대밭 풀숲에는

텃새들의 음모(陰謀)가

은밀하게 자라고


텅 빈 벤치엔

땡볕에 말라비틀어져 나뒹구는

한 조각, 희미한 추억 속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6월


척박(瘠薄)한 가슴속엔

어느 듯, 민들레꽃이 지고

해체된 기억의 파편들이

아픈 살점을 도려내어도


시퍼렇게 멍든 강물을 가르며

베이스 한 소절로 유람선이 떠난 후

헤어지는 아쉬움으로 멈칫거리다

낮달로 뜨는 6월, 그리움.

 

 

♧ 푸른 6월 - 목필균


내게도

저런 시퍼런 젊음이 있었던가


풀빛에 물든 세상

떠들썩한 세상이 온통 풀빛이다


흥건하게 번져오는 녹음이

산을 넘다가 풍덩 강에 빠진다


푸르게 물든 강물

푸르게 물든 강물이

또르르 아카시아 향기 말아 쥐고

끝없이 길을 연다


눈으로 코끝으로 혀끝으로

푸른 혈맥이 뛰며

펄펄 살아 숨쉬는 6월 속으로

나도 따라 흐른다

 

 

♧ 6월 - 이외수


바람 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 Slan Abhaile - Kate Purcell

 

출처 : 박새꽃으로 맞는 6월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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