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이제야 활짝 핀 서향

ehkoang은희광 2008. 4. 23. 22:31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한번 찍어서 올린 꽃은 다음 해가 돌아오기 전에는

아무리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이 보이더라도

웬만해서는 다시 찍지 않은 버릇이다.


하긴 이 세상에 명멸하는 수많은 꽃들 중에

새로 찍은 것만 올려도 다 못 올릴 것을

예쁜 것이 보인다고 다시 시간을 할애한다면

언제 일하고 언제는 그것을 올릴 것인가?


그렇지만 새 꽃을 찍어 올리려고 하여도

날씨가 따라줘야 하고 시간을 내어 돌아다녀야

꽃을 찾아 찍을 수 있기에 보통 열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서향도 피기 시작한 걸 보고는 오랫동안 기다리다

못 참고 어느 골목길에서 핀지 한 달이나 된 조금 마른 것을

할 수 없이 찍어 올렸었는데, 엊그제 큰 길거리에서

활짝 핀 것을 만나게 되어 예외적으로 두 번째 올리게 되었다.


 

♧ 꽃향기 - 황학주


나도 걸어왔지만 습지

주체 못할 줄기가 나고

몸 패인 데 꽃송이


꽃 피는 일은

모든 모퉁이에서

살아서 다치는 일이었는데


피었다

어디로 가느냐

모를 일이지만

지지 않는 것이

길뿐이지 않겠느냐


신발에 붙었다 떨어지는 일생의

개흙으로

빨래한 상처만

오늘은 향기롭게 가고 있네

 

 

♧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 이해인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곤 합니다.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 수녀원 언덕길의 천리향이 짙은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기에 깜짝 놀라 달려가서 아는 체했습니다.

"응, 그래 알았어. 미처 못 봐서 미안해. 올해도 같은

자리에 곱게 피어주니 반갑고 고마워."라고.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봄 향기 - 이재기


오랜 시간 꿈꿔온 긴 기다림에서

버릴 수 없었던 삶의 욕구가

제철을 만나 무게 실린 흙을 삐 집고

곱디곱고 연하디 연한 몸으로

오직 삶의 염원으로 고개를 들어

새로운 세계에 눈부시듯 경이로운 삶이 시작됐다


따스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삶의 분주한 희망의 합창

그렇게 다가오는 봄의 제전에서

향긋한 내음과 연두빛으로 피어나는 새싹이 있다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봄빛으로 자리 잡고

영원히 들려올 멜로디로 감싸 안는다


정녕 이것이 나의 현실인지

돌아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안고

설레이듯 흔들리는 마음 어디에 둬야 하나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최후의 봄 일거라는 생각에

이 시간 이렇게 소중함에 몸서리친다 

 

 

♧ 꽃 속에는 향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 김종제


 긴 강뚝길을 사월에 실연(失戀)한 사람처럼 홀로 걸어가 보라 앞산 뒷산 야단스럽게 피어있는 꽃들에게 눈길을 빼았겨 보아라 그러면 알리라 꽃 속에는 향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꽃 이파리 들여다 보아라 그 속에 가슴을 다 태워버리는 붉은 용광로의 불덩어리 있구나 저 잠잠한 하늘을 향해 여기 저기 불을 놓는 방화범의 얼굴을 보아라 강물 속에는 또 고요한 물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물속에 발을 슬쩍 던져 보아라 그러면 알리라 푸른 물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 놓고 있는 것을 심심하면 바람 불러와 휘두르는 강도의 칼에 찔려 깊은 상처만 남겨놓는 풍랑을 보아라 사월에 애인(愛人)을 잃어버린 나를 보아라 내 속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안에 치유 불가능한 병(病)이 가득 들어 있구나 내가 걸어가는 길에 꼿꼿이 고개 들어 버티고 선 숲속의 뱀과 사막의 전갈에 물려 독(毒)보다 더 지독한 마음 가진 나를 보아라 누군가 알겠는가 내속에 또 다른 사람이 있어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내가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도대체 그 누가 알 것인가

 

 

♬ 오카리나 연주로 듣는 Forever

출처 : 이제야 활짝 핀 서향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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