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면서 황매화가 있었던 골목길을 들렀는데
그 옆에 책에서만 본 이 꽃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중부지방 아래쪽에서 자생하고
제주도에는 자생하거나 심어 있는 것을 전혀 본적이 없기에….
콩과식물로 보여 얼른 책을 뒤졌더니, 바로 ‘선비화’라는 ‘골담초’다.
지난 2월 영주 부석사 답사 때 조사당 앞에 철망에 가린 채로 있어
잘 살필 수도 없고, 낙엽수라 잎사귀가 안 보여 팡악이 안되었다.
콩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인 골담초는 다 자라봐야 사람 키 정도라 한다.
부석사 조사당 처마 밑에 있는 골담초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도를 깨치고 천축국(인도)으로 떠나면서 자신이 왔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이 있고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 한다.
그 후 싹이 트고 가지가 나서 자라기 시작한 이 나무는 한 길 정도 자란 후
더도 덜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오랜 세월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하지만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신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문헌상으로는 조선 중기 때의 기록이 있어 그 때로만 쳐도 400년이 넘는다.
♧ 부석사 - 이지영
큰 바위가 아래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석(浮石)
앞뜰 연꽃 석등에
지는 해 걸어두고
시공을 넘나드니
극락초 붉은 송이
옛 연인의 혼 같구나
조사당 처마밑에 꽂았다던
중생의 지팡이
이슬, 비 맞지 않고도
푸르게 잎 무성하니
골담초 선비화라
이 신비의 조화
나라 지키려는
의상대사 혼이런가
♧ 한식(寒食) - 이정록
병이 깊으면
뒤뜰이 좋아지나 보다
간경화로 고생 많은 아버지와
할머니가 두런두런 뒤뜰 풀을 뽑는다
항아리로 차오르는 아버지의 배
화톳불 놓을 장작더미도 어루만지고
해묵은 국화며 상사초를 옮겨 심는다
(어머니, 울타리를 다시 허야것슈
뫼느리밑찡개만 무성헌 언덕빼기를 허물구
골담초두 욈겨 심구 두릎남구도 쉼궈야것슈
새끼덜 낭중에 고향집이라고 찾으면
가시 돋친 두릎순을 꺽으며 못난 애비 생각두 허것지유)
장날이면 호두나무며 대추나무 묘목을 사와
울안 구석구석이며 두둑마다
쉬엄쉬엄 구덩이를 파는
아버지는 평생 열매 좋은 나무였을까
(가꾸지 안혀두 크는 남구라야 혀
니네덜 죄다 대처에 살더라두
스러지는 지붕 너머로 혼자서두 열릴것잉께)
마음만 깊은 아버지의 나이테에
빙빙 황사바람이 인다 캄캄한
항아리 속 얼굴을 어루만지는 아버지,
병 깊고 나이 많아지면
기웃거리는 뒤뜰 잔바람이며
울타리 너머 차운 달도 다정한 벗이 되나보다
밥풀꽃 같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둠을 흔들며 모퉁이로 나온다
별이 뜨는 길은
뒤꼍으로 나 있는가
♧ 대양 - 오세영
돌다리 건너서니 길이 없구나.
사미야,
보이는 건 골담초, 패랭이, 달맞이,
하얗게 울어대는 갈대숲.
보이는 건 어욱새, 가시덤불, 쑥굴헝
까맣게 웅크린 널바위.
바람 불고
폭우 세차게 몰아치면
산은 해일처럼 일어서는데
사미야, 우리는
산에 든 한 조각 배였더란 말이냐?
어린 사미의 손목을 잡고
헤매는 길,
숲은 파도처럼 일렁이누나.
먼 항구의 배를 부르듯
사미야, 이제 너는
널바위에 올라서 바라나 치렴,
광풍에 날리면서 법고나 치렴.
길 밖의 길을 찾아 길 안의
길을 찾아 사미야,
너는 징이나 치렴,
바람 불면
산도 숲도 물이 되고
또 바다가 되는 것을.
♧ 선동(仙洞) 저수지 * 죽지사(竹枝詞) 3 - 박태일
선동은 푸른 동리
버들숲 푸른 물가로 물방개 빙빙 돌고
찔레꽂 골담초 사래 아래
의령 박가 내 사촌들 발을 씻는 곳
발을 씻다 흘러가는 닭털을 건지고 우는
두돌나기 조카 저수지 안기슭에 지붕 올린
고모 작은아버지 볼우물 이쁜 작은엄마
선동 오르는 길 올랐다 물줄기로 떠돌면
이제는 고인 물 하얗게 물때 낀 사금파리
길을 이루어 물자새 새끼들 물가로 오르고
방기 당기 물수제비 잠기는 사이사이
강갈매기 발 접어 하늘 건너
어디로 가나 고여 지새는 一家
이냥 작아지는 무덤으로 차례 누워
베롱나무 베롱꽃 흩는 버릇을
어쩔까 아버지 마시던 물을 아들이 마시고
그 물에 고인 할아버지를 손자가 찰방이는 바닥
날개짓 요란하게 솟는 까마귀 한 마리
오후 내 선동 물가에 가서
꿈같이 한 세월이 다시 일가를 이루어
저들의 마을로 돌아가는 것을
점점이 햇살이 찍어내는 물살 뒤로 바라보며
내 아들과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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