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하는곳

[스크랩] 백작약 꽃은 지는데

ehkoang은희광 2008. 4. 23. 22:22

 

♧ 2008년 4월 21일 월요일 흐림


희뿌연 날씨, 이것저것 원고 정리에 수업하느라 허둥대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갔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아 위층에 가보니 전체에 문제 있다고 한다.

원고나 정리하자고 컴에 앉았는데, 검색이 되지 않아 오랜만에 컴을 끄고

책을 보았으나 정신집중이 안 되어 TV로 눈을 돌린다. 


덕분에 오랜만에 드라마 ‘이산’을 만나 정조 임금과 송이의 사랑의 결실을

보기도 하고, 못 말리는 철부지들 ‘미녀들의 수다’까지도 즐길 수 있었다.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이 있지만 컴퓨터와 더불어 살다보니,

모든 게 컴퓨터 위주로 생활화 되어 과거 인터넷이 없는 시절엔 어찌 살았나 싶다.

 

내가 올 처음으로 백작약 꽃을 본 것은 3월, 한라수목원 온실에서였다.

구석진 곳에 한 송이 피어 있어 어렵게 카메라에 담아두었는데

4월 중순이 되어 새우란 전시회에 갔다가 딱 두 송이 핀 화분을 만나 찍고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여기저기에 올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월평동의 어느 민가 화단에서 핀 것을 보았던 것을 기억해 내어

가본 결과, 중산간지역이라 아직도 꽃봉오리가 작은 채였다. 그래 지난 주

느지막이 가보았더니 활짝 피긴 했지만 주인이 없어 월담할 수도 없고,

밖에서 어설피 몇 컷 찍었다가 아침(22일)에 찾아갔더니 이렇게 지고 있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데, 그러면 모두 떨어지리라.

 

 

♧ 물끄러미 - 장진숙


만발한 작약꽃밭에서 오래 전 세상 버린 할머니 생각 시린 늑골 뭉

클 건너오는데 뻐꾸기도 울먹 딛고 오는데 울안 가득 어쩌자고 작약

작약꽃만 지천으로 흐드러졌는지 몰라! 물끄러미 툇마루 앉아 시

름조차 깊고 환하시던 할머니 붉어진 눈시울이 일몰 때문만은 아니

었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오월도 끝물에 느닷없이 싸르르 배 아프고

 미열에 젖어 당신 약손 새삼 사무칩니다. 제발 그 뜨거운 꽃밭에서

나와 열꽃 핀 이마 좀 짚어주셔요 할머니, 잊혀진 생의 이파리마다

반짝이는 극락이 당신 허리춤의 비단 주머니 열어 알록달록 알사탕

꺼내 건네는 날은 핏줄의 파란만장이 명지바람에 실려 건너오는데

뻐꾸기도 울먹 따라오는데

 

 

♧ 개심사 소묘 - 박찬


 오랜만에 정갈하게 차려입고 뽀얀 먼지 이내 앉을 구두에 광까지 내고 봄나들이 나와 또래 소나무 그늘 아래 소주 안주로 새우깡이나 씹으며 모다 개다 걸이다 윷놀이에 열중하며 깔깔대는 노인들. 마고자 단추 풀듯 가슴 풀어헤치면 봄 다 가는데, 하양 분홍 연두빛 겹잎 벚꽃 뒤늦게 피어난다. 대웅전 섬돌 밑 작약, 꽃봉오리 몽울지는 백모란까지. 오래 된 해우소의 낙엽 냄새가 새삼스럽다. 오월 산바람에 댓잎은 밤새 저 홀로 쓸리고 있는데….


 

♧ 봄꽃이고 싶다 - 강명주

 

파스텔 빛

유채색의 봄날이 오면

나는

향기로운 꽃이고 싶다


진노랑 같이

개나리로 불리고

꽃 분홍 같이

진달래로 불리고


매화인 듯 목련인 듯

눈부신 흰빛 되고

꽃향기 되고 싶다


봄비 농익은 입맞춤으로

이렇게

떨리는 두근거림

일렁이는 날에는


가슴에 물결치는 대로

피어오르는

그런

영혼의 꽃 피우고 싶다

목단이고 싶고 작약이고 싶다


하늘도

땅도

봄이 여무는  날에는

힘없이 쓰러져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지천에 신록이 한창이면

봄비 되어

죽어가는

모든 것의 숨결이고 싶다

 

 

♧ 작약꽃 이울 무렵 - 유치환


저적히 갸우린 안에

억토(億土)에의 하아얀 길이 있어

하나 왕국이 슬어지기로소니

애달픔이 어찌 이에 더 하랴


나의 청춘이 소리 없이 못내 흐느끼는 날

더불어 고이 너도 이우노니


귀촉도야 귀촉도!

자국자국 어리인 피 가슴 밟는 울음에


아아 꽃이 지는지고

---아픈지고


 

출처 : 백작약 꽃은 지는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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