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입하(立夏)가 지나서 그런지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더운 날씨의 연속이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어서 거리가 매우 활기 찼다.
6시에 관광대학에서 열리는 뷔페 페스티벌에 다녀오려고
시 외곽지로 차를 모는데 시골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차가 넘쳐났다.
일년에 딱 하루 효도한다고 하지만 아름다운 풍속이다.
유동(油桐, tung oil tree)은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대극과의 낙엽교목으로
기름오동나무라고도 하며, 그렇게 흔한 나무가 아니다.
처음 대한 것은 람사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오름의 두 그루다.
중국 원산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심은 것도 아니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곳에 찍어 올린 꽃은 지난 1일 제주도교육청 서쪽 근린공원의 것이다.
높이 약 10m에 이르는 높은 나무여서 돌 벤치 위에 발돋움하여 겨우 요걸 건졌다.
한라수목원 입구 조금 위쪽 1100도로 도깨비 도로로 올라가는 곳에 몇 그루 있었는데
이 날 보니 한 그루만 남아 있었고, 꽃이 만개하지 않아 못 찍었다.
꽃은 암수한그루로 5월에 붉은빛이 도는 흰색으로 피고
씨방은 타원 모양이고 갈색 털이 빽빽이 나며 길이 약 4mm이다.
열매는 삭과인데 둥글고 3개의 종자가 들어 있으며, 독이 있는데
정원수로 심어 씨에서 기름을 채취하고 그 기름을 동유(桐油)라 한다.
♧ 5월가(月歌) · 소녀는 여인으로 - 유안진
보랏빛 라일락 진자주 모란의
꽃길 노랫길도
아카시아 들찔레의 숲길로 이어지니
소녀여 어느새
여인이 되었느냐
꽃등(燈) 찬란턴 꽃길이 끝나면
눈물어린 숲길이 열리게 마련인가
내 사랑 오월이여
소녀로 왔다가
여인으로 가는 이여
꽃피 펑펑 쏟던 우리 사랑도
비 맞아 키 크는
침묵의 숲이 되고 말았는가
외진 언덕 바위에 그냥 앉아서
긴 편지 아픈 사연 울어 외이느니
밤하늘 잔별을 헤어 적시느니
나도 이젠 휘파람 소년이 아님이라.
♧ 오월 종다리를 닮아 가며 살자 - 유안진
변두리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싶다. 서울이 넓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나가 보면 곧장 농사짓는 마을이 있으니, 어느 하루쯤 날 잡아서 나가 봐도 좋으련만, 한나절이나 아니 반나절쯤이라도 충분할 수 있으리.
그저 질펀한 무논이 있고, 언덕배기에 푸른 보리밭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나직한 산아래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수없이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이들을 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꽉 막힌 가슴에 바람 한 끝 스며들 구멍이라도 뚫리리. 그러면 자기 삶을 보는 어떤 깨달음의 눈도 떠지지 않을까. 사람이 흙으로 빚어졌다는 말씀이 진실로 옳은가? 왜 이렇듯 흙내음이 그립고 자연이 보고 싶은가?
우리들 가슴마다 저 질펀한 못자리처럼 남 모르는 슬픔과 남 모르는 고통의 늪을 지닌 채 살고 있지 않은가. 흙탕물 질펀한 무논 바닥에 종아리를 성큼 걷어붙이고 들어서, 모를 내고 모를 심는 농부와 그의 아낙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너무도 안이했고 허황된 요행이나 꿈꾼 듯, 그냥 미안하고 죄스러워지는 것을.
저 진흙탕 무논 속에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육신의 힘겨움과 마음의 고달픔과 동시에 싸우며 일하는 저이들의 가슴속에는 무논보다 더 넓고 더 큰 괴로움의 늪이 숨겨졌으리. 그럼에도 그러한 무논에서 모를 심어 알곡을 거두려는 의지야말로 대담한 도전이며, 대범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삶이란 분명 인간끼리 아웅다웅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지 않는 상처를 주고받는 경쟁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무한대의 자연에 도전하고 자연과 경쟁하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받으며 자연이 깨우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그것이 아닐까.
그 누구도 오월의 들녘, 저 가슴 쥐어뜯는 삶의 피땀이 질척이는 농촌을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론 보지 않으리. 거칠고 험한 농사일을 전신으로 가슴 전체로 감당하느라, 삭신이 들쑤시는 처절한 삶의 현장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안간힘 써 경쟁하는 좁은 도시 공간에서보다, 더 절실한 생존의 의욕과 삶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현장이 되리라.
작은 가슴에 깊고도 커다란 슬픔의 늪을 지닌 그대는 눈물 질척이는 오월의 무논으로 가 보자. 그리고 그대 가슴의 질편한 늪 속에다 그 어떤 의지의 모를 심어야 하는지를 터득해내자. 지금 절망한 그대도 오월의 들녘으로 나가 보자. 소중한 영혼의 그릇인 육신을 아끼지 않고 무논 바닥에 엎드려 긴 호흡 몰아쉬며 노동의 고통을 참아내는 아낙을 바라보자.
그 누가 육신의 고통을 마음의 고통보다 가볍다고 하겠는가? 손가락 한 끝에 상처를 입어도 온몸이 괴롭고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될진대, 진종일 무논 바닥에 엎드린 여린 아낙의 고통을 어찌 가볍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가슴 안 고뇌가 우리의 것보다 가볍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가슴 안 슬픔의 늪에서 구성진 노랫가락 뽑아 가며 힘든 노동을 이겨내려는 생존의 지혜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금 억장이 무너지는 그대도 저 언덕배기 보리밭의 푸른 이랑을 바라보자. 지난 가을 씨 뿌려져,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낸 보리밭이 아닌가? 우리 가슴 무너지는 억장도 견디고 나면 어떤 미소가 이랑지며 물결치지 않으랴.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어찌 성현의 말씀뿐이겠는가? 오히려 신(神)이 지으신 대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보리밭 이랑에 물결치는 바람 따라 높이높이 날아오르다 날아 내리며 멍든 가슴 풀어풀어 지즐대는 종다리를 닮아 살 일이다. 비록 하찮은 미물인 작은 날짐승이라 해도, 가혹한 겨울을 모질게 살아 남았고, 그 여린 목숨을 노리는 힘센 짐승의 위험에서도 살아 남아야 하는 가혹한 운명과 쉴새 없이 싸워야 하지 않았는가. 그의 운명이 그처럼 가혹하다 하여 비탄과 절망에 허덕여야 할까? 분명 아니리. 그럴수록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기뻐할 줄 알며, 오월 보리밭의 그 푸른 마음을 제 것인 양 누릴 줄도, 감사할 줄도 알며, 그래서 제 신명 돋워 목청껏 노래하며, 슬픔도 비탄도 노래로 춤으로 풀어내는 것이리.
살아가는 길엔 가다가다 가시넝쿨 얽힌 깊은 구렁도 있고, 산을 넘어서면 태산이 가로막는 기막힌 고비고비가 있게 마련일진대, 그 길을 걸어가는 지혜도 오월보리밭 종다리처럼 제 스스로 터득해야 될 것이다. 진종일 따가운 햇볕 아래 허리 휘어 모를 심으면서, 노동의 힘겨움을, 남 모르는 고뇌를 노랫가락 한 곡조로 풀어내는 농부들도 오월 종다리처럼 제 스스로 터득한 생존법일 게다. 삶이 아파 노래는 구성지고, 가락을 뽑아야만 허리 접혀 막힌 숨을 내어 쉬게 되고, 그래야 호흡이 조절될 수 있는 것. 호흡을 조절해야 힘든 노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을.
모 심는 아낙처럼, 종다리처럼, 삶의 아픔도 노래로 풀어내자. 오월엔 종다리를 닮아가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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