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날씨도 좋고 2~3교시가 비어있어
지난 1일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이 매우 궁금,
견딜 수 없어 차를 몰고 달리는데,
이번에는 현호색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 현호색 먼저 보고 나머지 시간을 할애
기념관 보고 오자고 작정하고 먼저 갔더니
숲속 바람꽃과 복수초가 차지했던 자리엔
온통 현호색의 천국이었다.
사진을 찍고 동굴처럼 생긴 전시관으로 가는데
TV 녹화 왔다는 ‘순이 삼촌’의 현기영 선생이랑 조선희 여사랑
입구에서 오랜만에 해후(邂逅)했다. 몇 년 전 셋이서 M라디오
‘제주사람 어떻게 살았을까’를 몇 달 방송했었다.
오늘이 청명, 농가에서는 지금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간다.
청명과 관련된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가 있는데,
청명과 한식이 겹치거나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 청명(淸明) - 권경업
숲이 되고 싶으세요?
써레봉 자락 새순 돋을 즈음
장당골 아직 아린 내(川)를
둥둥, 맨종아리로 건너보세요
누구라도 금방
무성한 숲 될 거예요
겨우내 얼어붙었던 탄성
절로 풀리며
♧ 꽃 위에 꽃이 피다 - 윤지영
청명한 하늘 아래는
달콤한 꿀에 중독되어
환각의 들판을 비행하는
나비와 벌의 세상, 그 곳에서
나는 사랑의 병이 깊은
창백한 얼굴의 꿀벌 한 마리
나는
갓 피어난 어린 꽃 속으로
늙고 주름진 나의 날개를 내리고
붉은 꽃잎 위에
나의 여왕에게 바치는
긴긴 편지를 쓰고는
꽃향기에 목을 매어
꽃 속에서 죽다
나의 삶에 오랜 가뭄은 끝나고
꽃 위에 꽃이 피다
♧ 내 영혼에 섬 하나 있어 - 주금정
내 영혼에 섬 하나 있어
쉼 없는 파도와
표정 없는 해초로 둘러싸인
흔들리는 섬 하나 있어
날마다 조금씩 가라앉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씩 떠오르기도 하는
절망의 부피로 부대끼는
섬 하나
청명한 날이면
실핏줄까지 환한 손짓
귓전에 머무는 노래
그러나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우리들 뿌리 없는 갈망
사랑으로든
행복으로든
혹은 그 흔한 희망으로든
이름이야 무엇으로 불리우든 결국에는
낡은 울음으로 추출되고 마는
내 영혼에
섬 하나 있어
♧ 나뭇잎 꿈 - 도종환
나뭇잎은 사월에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는 잎이 가장 맑다
연둣빛 잎 하나하나가 푸른 기쁨으로
흔들리고 경이로움으로 반짝인다
그런 나뭇잎들이 몽글몽글 돋아나며 새로워진 숲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산은
어디를 옮겨놓아도 한 폭의 그림이다
혁명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버린 건 아니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꼭 사월 나뭇잎처럼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으면 싶다
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가지마다 빛나는 창을 들어
대지를 덮었던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환호하듯
우리도 실의와 낙망을 걷어내고
사월 나뭇잎처럼 손사래 쳤으면 좋겠다
풋풋한 가슴으로, 늘 새로 시작하는 나뭇잎의 마음으로
♧ 변주곡 - 김종제
나무 높은 곳에
저를 우러러 보라고 핀
해마다 그 꽃 보다가
비바람 몰아친 어제 마당을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데
땅 가까이 몸 굽히며 핀
보라빛 현호색 보았다
배를 깔고 그냥 엎드려 피었다
누워서 그냥 잠든 채로 피었다
저 꽃 같은 삶이야말로
이름도 없이 야사처럼 살다간
저 아랫동네 이웃들이다
머리에 쓸 관도
반짝이는 옷도 없이
옷 한 벌로 즉흥처럼 살다간
민초들의 삶이다
거추장스러운 틀을
한 번쯤 확 뒤집어 버리려고
함성처럼 깃발처럼 일어난
저 꽃이 변주곡이다
허공에 붕 떠 있지 않고
흙에 발을 딛고 사는 삶이라
내일이나 모레에 다시 필지 말지
앞날을 모르는 생이다
뿌리도 깊게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고
세상 꽉 붙들어 매어놓은 꽃이다
♬ Sound of Music-edelwe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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